배달 없이 한 달 살기 가능할까?– 편리함을 내려놓자, 진짜 삶이 보였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가능할까? 그 도전의 이유
나는 배달 앱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배달 음식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오면 요리할 기운은 없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도 충분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열었던 배달앱에서 치킨, 떡볶이, 분식, 국밥, 샐러드까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30분 만에 따뜻한 음식이 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것이 ‘현대인의 당연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배달 음식 용기로 가득 찬 재활용 쓰레기장을 보고 멈춰 섰다. 내가 매일같이 소비하고 버리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나무젓가락들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특히 제대로 씻지 않고 버려진 국물 용기를 보며, 나 역시 이 무책임한 소비의 일부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이후 나는 고민했다. “과연 내가 배달 없이 한 달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음식 소비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삶의 리듬과 행동 패턴,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실험이 될 것 같았다. 이건 단순히 배달을 끊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삶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기회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프로젝트. 단 한 번도 음식 배달 없이, 직접 요리하고 장을 보고, 식사 시간을 오롯이 나의 리듬에 맞춰 살아보는 도전이다. 이 도전이 성공할지, 중간에 포기할지 나조차 확신이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 바꿔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는 분명했다.
이 글은 내가 직접 실천한 30일간의 기록이다.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어떻게 삶의 만족도와 음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지,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혹시 당신도 ‘배달 좀 줄여볼까?’ 생각 중이라면, 이 글이 실질적인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 준비가 반이다
나는 첫날부터 허둥지둥거리기 싫었다. 그래서 도전 전 주말을 이용해 ‘배달 없는 한 달’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냉장고 점검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 쓸모 없는 잼, 얼려놓고 잊은 냉동식품들을 모두 정리하고, 기본 식재료 중심의 구조로 바꿨다. 계란, 채소, 두부, 파스타 면, 곡류, 김치 등 평소 자주 사용하는 재료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웠다. 냉장고가 깔끔해지자 심리적으로도 준비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방 도구도 손봤다. 미니 전기오븐, 믹서기, 에어프라이어 등 그동안 잘 안 쓰던 도구들을 꺼내거 상태를 확인하고 청소했다. 평소에는 요리 대신 배달을 했기에 이 도구들이 장식품처럼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주방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먹는 행위의 주도권’을 다시 내 손에 쥐는 기분이었다.
그다음은 장보기 전략을 짰다. 평일엔 장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말에 일주일 치 식재료를 계획해서 한 번에 사기로 했다. 계절 채소, 두부, 달걀, 식빵, 냉동 고기, 커리 재료 등을 중심으로 일주일 메뉴를 대략 구성했다. 예를 들어, 월요일은 비빔국수, 화요일은 두부 스테이크, 수요일은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식으로 말이다.
가장 중요했던 건 간편식 대신 ‘직접 조리 가능한 재료’를 중심으로 장을 보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냉동피자나 조리된 볶음밥을 자주 샀다면, 이제는 쌀을 불려 밥을 짓고, 소스를 직접 만들기로 다짐했다. 이 변화는 불편했지만 동시에 ‘먹는 일에 집중한다’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 자신과 약속했다. 배달 앱을 삭제하는 대신 홈 화면에서 치우고, 30일 동안 실행하지 않기로 했다.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진짜 도전이 시작되었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 불편함이 만든 새 루틴
첫 주는 혼돈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평소처럼 배달 앱을 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오늘만은 시켜도 되지 않을까?’, ‘이건 좀 예외로 해야 하지 않나?’라는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고, 미리 계획한 요리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 가장 놀라웠던 건 요리를 하면서 생각이 고요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칼질이 서툴고 양념도 감으로 하는 편이라 요리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힐링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디지털 기기에 쌓인 피로가 오이 자르는 소리, 후추 뿌리는 순간, 국물이 끓는 냄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요리는 육체적 노동이지만, 동시에 감각적 명상이기도 했다.
배달 음식을 끊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식사 시간의 질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TV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배달 음식을 대충 먹는 게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만든 음식의 색과 냄새, 질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는 음식을 ‘받아먹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창조하고 즐기는’ 자세로 바뀐 것이다.
물론 불편함도 있었다.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 급히 살 수 없고,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는 불만족도 있었다. 특히 치킨이나 분식 같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음식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땐 오히려 커피 한 잔을 내리거나, 과일을 손질해 먹는 등 대안을 찾으면서 욕구를 관리하게 되었다. 불편함은 결국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 쓰레기, 건강, 지출까지 줄어든 변화
배달을 끊고 2주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체감되는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쓰레기 양의 급격한 감소였다. 일회용 용기, 나무젓가락, 비닐봉지 등이 사라지면서 주방 쓰레기통이 비는 일이 많아졌다. 분리수거함도 거의 비워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음식 포장재로 인해 매주 쓰레기를 2~3봉씩 배출했는데, 배달 없는 생활을 하면서 1주일에 1봉으로 줄었다.
건강에도 변화가 생겼다. 배달 음식 특유의 짠맛, 기름기, 자극적인 양념에서 벗어나자 속이 덜 더부룩하고, 식후 졸림도 줄었다. 몸무게는 단기간에 눈에 띄게 줄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의 감각이 더 가벼워지고 활기차졌다. 무엇보다 매끼 내가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요리했는지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 놀라운 변화는 지출의 감소였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배달만으로 몇십 만원을 쓰는 날이 많았지만 이제는 장을 보며 일주일과 한달 단위를 정해 계획적으로 소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 달 식비가 절반 가까이 줄었고, 낭비 대신 체계적인 소비가 습관이 되었다. 배달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소비였지만, 직접 요리는 계획적이고 의미 있는 소비였다.
이 모든 변화가 텀블러 하나 바꿨을 때처럼 작지만 강하게 다가왔다. 배달을 끊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내 삶은 조용히, 단단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배달 없이 한 달 살기 –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삶의 선택
드디어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자축 삼아 배달 앱을 열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킬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봐도 “굳이 지금 배달을 시켜야 하나?”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배달 앱을 다시 닫았다. 한 달 도전은 끝났지만, 실천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후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아주 특별한 날에만 배달을 이용하고 있다. 그것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배달 없는 삶을 경험하면서 나는 ‘편리함이 전부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과 체력, 감정 모두가 조율된 상태에서 먹는 집밥은 그 어떤 미식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었다.
배달을 멈춘 덕분에 음식과 친해졌고, 요리와 가까워졌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도전은 식습관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구성한 계기였다. 이제 나는 한 끼를 먹기 위해 필요한 시간, 에너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혹시 당신도 “배달 좀 줄여볼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말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적극 추천하고 싶다. 처음은 불편하지만, 곧 달라진 자신을 만나게 될 테니까. 배달 없는 한 달은 가능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한 달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